100 Books Project (2): Crossroads (갈림길)
March 13, 2019
⏳ 23 min read
Encountering the book
Sudden encounter over this book just walking by a random bookshelf in the library led me to spend the whole afternoon to read from the start to the end of this book!
I did not know this book is about christianity. I just picked up this book and looked inside; then I recognized it’s a fiction about christianity. Because I read this book translated to Korean, it would be a better idea to write reflections in Korean. Now it starts.
Reflection
주인공 앤토니 스펜서(토니)는 혹독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성공한 사업가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을 모른다. 이기적인 성격이다. 이혼을 두 번이나 했다. 심지어 똑같은 사람하고 말이다. 아들은 어린 아이에 죽었고, 하나 남은 딸은 본인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부와 명예 측면에선 성공했지만 인간으로서는 상당히 실패한 사람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토니는 심각한 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어 꿈을 꾸게 되는데 예수님을 비롯한 많은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토니는 끝내 변화하여 자신의 생명을 다른 이에게 내어주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불신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음
토니는 불신자다.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지만 본인만큼은 불신자였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진지하게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게 된다면? 작가 윌리엄 영은 예수님께서 직접 토니에게 기독교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주어 불신자들도 기독교에 대한 생각에 접근하기 쉬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토니는 그저 그냥 관심 없는 불신자의 태도나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난 이제 그런 거 믿지 않아요. (p. 64)
혹은 사실 기독교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많이 없으신 분들도 있기 때문에, 질문에 토니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장면을 책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해가 안 가네요. 그 차이가 뭡니까? 그게 나에게 사실이면 곧 진실이 되는 거 아닙니까? 미안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제게 선택의 여지가 있나요? 이 상황에서 왜 로리 이야기가 나오죠? (이상 p.61)
그의 입장으로 불신자들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 게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기독교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진짜 이해할 수 없는게 99%기 떄문에 (만약 조금이라도 깊게 파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토니의 이런 완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잭은 너그럽게 설명을 이어나간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는 것 같다: 듣는 입장에서는 일단 듣고 보는 것, 그리고 전도하는 입장에서는 일단 말하고 보는 것.
듣지 않고 판단해버리는 건.. 오히려 본인의 세계와 지식을 좁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다른 종교 (혹은 불가지론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때로는 찾아보기도 한다.
찰진 비유
윌리엄 영은 토니의 마음/신앙 상태를 성벽과 마을같은 구조에 빗대어 비유한다. 근데 이게 진짜 이해하기가 쉽다. 돈과 명예, 욕심 등등에 의지했을 때에는 성벽이 튼튼했지만, 결국 토니가 이것을 포기하게 되었을 떄 성벽은 온데간데 없다. 오로지 경계 만이 남았을 뿐.
기가 막힌 노크/초대 비유도 재밌다. 토니는 잭이 있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노크를 하려고 하는데…
토니가 중얼거리며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드는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반대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분명히 노크를 하지 않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토니는 혼란에 휩싸인 채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 때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생략) (p. 50-51)
문 안쪽에서 바깥쪽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노크. 들어본 적이나 있는가?
걸어잠긴 성문을 본인이 노크하고 본인이 열어준 기가 막히는 사람인 잭은 이렇게 말한다.
토니, 당신은 날 알아요.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날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날 초대한 거고요. (p. 57)
그렇다. 그래서 잭이 노크를 한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를, 우리가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을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이 미묘하고도 아이러니한 과정을 정말 잘 표현해준 것 같다. 우리도 예수님을 초대해야 하지만, 우리도 기독교라는 곳에 들어가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초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작가가 내가 말하는 이 상황을 잘 정리해준다.
초대? 난 예수를 초대한 기억이 없어요.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겠어요. 이곳에 초대할 만큼 잘 아는 사람들이 내게 있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자네의 초대가 아니었네, 앤서니. … (생략) 저의 초대가 아니라면 누구의 초대인가요? 아버지의 초대라네. 파파 하느님. (p. 113)
이 말도 안 되는 말이 사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그 상황이다. 서로가 서로를 초대하는.
믿게 되는 과정
사실 내가 기독교를 믿게 된 과정은 이성적인 신앙과 변증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C.S.Lewis나 Tim Keller, William Craig 등의 영향을 받은 감이 없잖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방식보다는.. 음.. 그저 기독교의 교리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길을 택한 것 같다. 사실 어느 방식이 더 낫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책을 보면서 느낀 건 후자의 방법이 정말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에 친구를 붙잡아 두고 매일매일 보며 얘기해줄 시간이 있다면!
하나를 설명해 주면 그것에 대한 질문이 또 생긴다. 그것에 답을 해주면 또 질문이 생긴다. 이 과정을 작가는 인내심 있게 잘 풀어내줬다. 정말정말 좋다. 믿지 않는 분들도 이걸 보면 가지고 있던 의문점들의 사슬들이 깨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 의문점들을 대략 다 파헤쳤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대략 알겠다면, 아니. 사실 다 몰라도 된다. 그저 예수님이 나를 이 답없는 세상에서 구출해 주실 수 있다는 것만 믿을 수 있다면, 결국 마지막에 해야 할 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결정.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당신이 동의하게 될 일이 뭔지 알고 싶지 않습니까? 예수가 물었다. 제가 자유의사로 동의한 거죠? 어떤 식으로든 강요당한 건 아니죠? 당신이 자유롭게 결정했어요. 좋아요. 그럼 믿겠습니다. 토니가 낯선 자신의 모습에 놀라움을 느끼며 뒤로 기대앉았다. (p. 124)
토니도 믿겠다고는 했지만 아직 자신이 마주치게 될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럼 제가 이제 뭘 하면 되죠?
설명은 많이 들었지만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믿어보자’라는 것 같다. 이 방식 또한 좋다. 알아가면 되니까!
사랑
요한일서에 나와있듯이 사랑은 기독교, 그리고 하나님의 핵심이다.
윌리엄 영의 상상력이 부럽다. 사랑을 이렇게 표현해 주었다.
다양한 빛깔의 불빛으로 이루어진 선의 끝과 끝을 무심하게 잇는 모습을 … 빛이 빛과 닿는 순간, 색이 합쳐지고 변화가 일어났다. 무지개 빛깔을 띤 청록색은 자주색을 배경으로 파도치는 수천 단계 명도의 초록색, 빨간색들로 변했고 그동한 흰 색깔도 계속 반짝였다. 새로운 색이 만들어질 때마다 들릴락 말락 한 음이 시작되었고 그것들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화음이 되었다. … 문양과 모양들이 점점 더 복잡해지다가 갑자기 어둠 속에서 작은 폭발들이 일어났다. 어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빛깔의 다이아몬드 폭죽이었다. 그러나 불꽃은 사라지지 않았다. …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
그리고 사랑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토니는 크게 좌절한다 (마치 내가 그랬듯이)
이제 그는 또 다른 거대한 어둠과 대면하고 있었다. 그가 오랬동안 마음속에 간직해왔고 그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키워왔던 어둠이었다. … 함부로 남을 비판했던 그의 습관은 너무도 끔찍하고 섬뜩하게 느껴졌고 … 완전히 파괴할 위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토니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데…!
토니의 변화로 볼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
일단 책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토니는 또다른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바로 남들 머릿속에서 그들이 보는 걸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처음 보고는 이게 뭐지? 싶다가 나중에는 작가가 이런 효과를 위해서 이런 장치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토니는 캐비, 매기, 클래런스 장로, 몰리의 머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 캐비는 몰리의 딸. 다운증후군이 있어서 16살인데 8살의 지능을 가지고 생활함.
- 매기는 캐비의 이모. 간호사.
- 클래런스 장로는 매기와 몰리가 다니는 교회의 장로. 나중에 매기와 약간 썸? 같은 걸 타게 된다.
- 몰리는 캐비의 어머니. 역시 매기와 같이 간호사다.
- 리지는 토니가 머릿속에 들어가진 않지만 설명한다. 리지는 몰리의 또다른 아이다. 근데 백혈병에 걸려서 거의 죽기 직전이다. 토니가 혼수상태에 빠져 입원해 있는 병원에 똑같이 입원해 있는 아이다. 둘 다 병상 위에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보면 될듯.
이상 등장인물들은 모두 교회를 다닌다. 하나님을 믿는다.
토니는 캐비와 몰리의 딱한 사정을 마음속 깊이 느끼게 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아마 본인이 재정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 나름 평온하게 잘 살고 있었다는 걸 (상대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몰리의 가정은 토니 못지 않게 안 좋은 상황이니까 말이다. 돈 없지, 캐비는 다운증후군이라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지, 리지는 백혈병이지, 몰리는 바쁘지. 이런 상황에 처한 몰리와 매기지만 이 두 사람이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본 토니는 왠지 모를 심경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렇게 힘든 일도 견딜 수 있는 거였나? 이런 힘든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게 되나?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네…” 몰리가 그 대목을 부를 때 토니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캐비도 느리고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 불렀다. “예수니 나르 사라하시네…” 토니도 함께 부르고 싶었지만 가사가 기억나지 않았다.
토니의 생각도 변화하게 된다. 그는 다운증후군을 겪고 있는 캐비를 불쌍히 여긴다.
그런데 캐비는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드네요. 캐비? 캐비는 자네한테 똑같은 말을 할걸! 토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를 안됐다고 생각하지 말게. 그 아이의 망가진 부분이 자네의 망가진 부분보다 좀 더 분명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 뿐이니까.
육신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여기서 잘해봤자 100년 사는 거고 죽은 후가 중요한 것 뿐이다. 그 관점에서 할머니(성령님)가 토니를 가르치고 있다.
한편 토니의 머릿속 동네에 몇몇 친구들이 등장하게 된다. 스왜거 (Swagger), 블러스터 (bluster), 에고 (ego), 그리고… 자기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한 괴물 (본인).
이들은 토니의 성공이 본인들로 인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토니의 세상적인 성공(부와 명예 등)은 빈정거림, 시기, 질투, 다툼, 허세,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함으로 가능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다 필요 없다. 이전에 내가 추구했던 것은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사랑하시는 가치들이 필요할 뿐이다. 토니의 진솔한 고백을 들어보자.
이제 난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내게 필요한 건 정직과 성실 그리고…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난 (타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했어요. 하지만 그건 전혀 자유가 아니었어요. 나에게 있던 자유가 한 일이라고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내 마음에 담을 쌓는 것뿐이었어요. 나는 하나님을 믿을 만큼 그 분을 잘 알지는 못해. 하지만 예수님이 아버지를 신뢰하고 계신 것만으로도 충분해.
동네의 깡패(?) 친구들과 담판을 짓고 이긴 토니는 이것이 자신이 쌓아놓은 (마음의) 성벽을 허무는 하나의 과정이란 것을 꺠닫게 된다.
우린 마음에 우리가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잔뜩 저장해놓는다. 자존심. 교만. 명예. 부유함. 성공함.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등등. 이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씩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 성벽들이 무너지게 된다. 성벽이 무너지면 좋은 거냐고? 물론이다. 장벽을 허물 떄 예수님이 들어오시니까.
처음엔 자넬 지켜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자넬 파멸로 몰아가는 거야.
더 적고싶지만, 하여튼 토니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상당한 그리스도인으로 회복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치유할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을 혼수상태에 빠진 본인에게 쓰지 않고 리지에게 쓰는 사랑의 진가.. 혹은 믿음의 진가?라고 해야하나?를 발휘한다.
못 해요. 매기, 난 평생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살았어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요.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정말 멋지다.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고백하는 능력이 생겼다. 리지를 고쳐줘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삶은 아주 짧게 잠시 들렸다 가는 삶이니까.
아니에요, 매기. 그렇지 않아요. 정확히 그 반대에요. 난 내 삶을 빼앗고 있는 게 아니에요.
토니는 비로소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렇게 책도 끝나고, 그 과정도 막을 내린다.
그의 땅이었지만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전을 무너뜨린 강이 성벽도 거의 다 허물었다. 한때 불타고 황폐했던 곳들은 생기 넘치게 바뀌어 있었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주 좋아졌어! 아주 많이!”
이 과정 속에 정말 많은 여러가지가 섞여 있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도 말이다: 관계의 치유, 생각의 전환, 회개, 믿음, 등등… 여러모로 진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Epilogue
사실 내가 횡설수설했다. 너무 많이 적어서.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진짜. 근데 이 책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