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올라탄 할머니
February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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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 아무도 타지 않을 것 같은 정류장.
온몸을 방한용품으로 꽁꽁 싸매신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엄청 느리게 올라타셨다.
그런데 버스 기사님이 할머니 카드 찍고 타세요 이러시네.
나이 드신 분이라 잊어버리실까봐 그런가.
그런데 버스 기사님 하신 말씀은 듣지도 않으신 채 천천히 지나치신다. 카드 리더기 앞을.
버스 기사님은 버스를 다시 출발하실 생각이 없다.
할머니!! 카드 대시라고요!!!
할머니는 들리지도 않게 중얼중얼.
뭐야? 왜 저러시지.
약 30초간 그렇게 대치상태. 카드 대시라고요는 내리세요로 바뀐 지 오래. 내리세요와 중얼중얼의 대결.
불현듯 든 생각은 이분이 돈이 없으셔서 그런가?
대신 내드린다고 말할까 말까.
침묵은 바보도 천재로 보이게 만든다. 결국 말은 안했고 가만히 있었다.
다른 분께서 사람의 물결을 뚫고 나오셔서 제가 대신 내드릴게요라고 하시네.
그런데 버스 기사님이 하시는 말씀. 하지 마세요.
안돼요 그쪽이 몰라서 그래요!!
슬슬 감이 오기 시작. 중얼중얼 할머니의 두툼한 패딩과 내 후드의 뒷부분이 살짝씩 닿으며 긴장감은 고조.
할머니는 약 1분동안 중얼중얼. 고개는 숙이신 채.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 저 집 좀 갑시다.
결국 올라오셨던 길 그대로 다시 내려가시네. 아주 천천히.
할머니가 내리시자 기사님은 돈을 내주시려고 하셨던 분께 설명 시작.
저분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그게 본인이 자꾸 넘어져놓고 우리 잘못이라고 한다니까??
무전기로도 타 기사님들에게도 상황 송신. 얼핏 회신 오는 말을 듣자하니, 왜 하필 오늘은 왜 거기 있냐. 등등.
나는 저런 할머니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